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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안내
    전시기간 : 2011년10월20일(목) ~ 11월16일(수)
    전시장소 : 한원미술관, 서울시 서초구 서초3동1449-12
    개관시간 : 화-일10:00am-6:00pm
    문의 : 02-588-5642 블로그: kim_shin_hye.blog.me


평론

환상의 시대, 우린 무얼 먹고 사는가


상품을 통해 현대 소비문화를 그려 온 김신혜는 다양한 국내외의 음료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새롭게 선보인다. 거대한 물병과 그것에 그려진 상표에서부터 확장되는 드라마틱한 자연의 모습들은 상표에 그려진 그림이 마치 살아 나온 듯 화면을 넘나든다. 이렇듯 가상이 실재인 듯 가장한 화면의 연출은 작가가 출발하고 있는 상품과 현대 소비사회의 시작점이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말하는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초과실재들의 생산과 이 초과 실재된 이미지인 시뮬라크르의 삶을 분명하게 조형으로 완성시키고 있는 듯하다.
사실 보드리야르가 1970년 <<소비의 사회: 그 신화의 구조>>에서 팝 아트를 기술하면서 상품을 기호로 등치시키고 기호는 곧 교환가치이며 세계이며 곧 예술이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상품=기호(교환가치)=세계라는 등식으로 성립된다. 그리고 그가 1981년 <<시뮬라시옹>>을 완성시킴으로써, 실재를 가장한 기호들이 무한 증식하는 “원본 없는 이미지”의 시뮬라시옹을 통한 시뮬라크르의 환상을 이론화 시키고 있다. 곧 상품은 세계이며 시뮬라크르이며 환상이라는 것이다.

김신혜가 처음 상품을 통해 시뮬라크르의 삶을 이미지화 하면서 쓴 글에는 매화의 꽃을 본적도 그 향기를 맡아 본 적도 없는 우리는 붉은 매화가 그려진 음료의 그림을 친숙하게 이해하고 매화하면 의례히 이러한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쓰고 있다. 본적이 없으면서 체화(體化)된 이미지의 세계, 마치 이미지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세계, 이 원본 없는 복제물들 속의 초과실재들 즉 시뮬라크르에 길들여져 자라온 작가를 포함한 포스트모던 시대를 향유한 현대 인류의 단면을 진지하게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피지(FIJI)라는 큰 상표를 부착한 상품의 물병이 한 폭의 산수화 사이에서 우뚝 서 있거나 클라우디 베이(CLOUDY BAY)의 병은 아득한 산봉우리들 사이에 놓여 있는 이 풍경에서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왕과 신하의 위계를 표현하던 빅 보스(BIG BOSS)의 개념이 그대로 차용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작가가 처음부터 사용하던 이미지의 확대 방식이기도 하지만, 고전의 개념이었던 권력과 힘을 표현하던 빅 보스를 상품과 자연의 그리기에 대입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의 상품의 지위가 하나의 권력으로서의 군주와도 같은 힘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곧 실재보다 더 크게 압도적인 크기로 확장된 형태에서 상품의 지위와 힘을 명징하게 드러내고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한 규모의 물건에서 숭고와도 같은 거대한 힘을 느끼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상표이면서 자연으로 확장해 나가는 이 모순되고 거짓된 이야기들은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경험하는 자연의 모습이기도 하다. 현재의 사회는 자연이고 이상사회라는 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은 상품이 교묘하게 가장하고 있는 인공의 자연이고 아득하고 그리운 실재 자연의 향기와 향수를 담은 자연이며 또한 이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사회를 가장한 자연인 것이다. 작가가 그린 피지물병에서 폭포가 쏟아지고 동양 산수의 지극한 극치의 이상계를 표현한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상품은 이상사회를 가장하고 그것을 먹고 마시고 가지면 그 멋진 세계와 실재의 유토피아를 경험할 수 있는 것처럼 유혹한다. 어쩌면 <<시뮬라시옹>>의 보드리야르, <<스펙타클 사회>>의 드보르(G. Debord)가 말하는 상품사회 이론들이, 작가의 화면에서 완성되는 듯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거대한 상품의 스펙타클한 자연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현대 소비사회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그 안에서의 길들여진 인공자연의 모호한 모습들을 뚜렷하게 증언하고 기록하고 있는 듯하다.

먹과 분채로 종이에 천천히 스며들고 음미된 화면에서 고향과 같은 실재의 삶과 자연을 향하는 그리움과 같은 노스텔지아가 배어나오고 있다. 그리고 화려하게 치장한 거대한 상품 이면에 가려진 소외된 자아의 심심한 표정이 번져 나온다. 이는 작가가 전작(前作)에서 보여주었던 이젠 인간의 동반자로 이해되는 강아지와 같은 애완동물의 그림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비사회의 떠다니는 기호 속에서 따뜻한 인격체로서의 인간이 위안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애완동물들은 그 자체로 소외와 극복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며 존재인 것이다. 작가가 그 소외와 휴식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든 있지 않든 소비의 사회 이면에 존재하는 쓸쓸한 인간내면의 자아는 작품 곳곳에 숨겨져 있으며 이는 분명 치유하고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존재한다.

드보르가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현실의 소비자는 환상의 소비자이며, 상품은 사실상 실재하는 환상이며, 스펙타클은 이런 환상의 보편적 표현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풍부한 상품들이 되레 정서적 결핍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환상을 먹고 마시고 입는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존재하는 인간으로서의 소외와 결핍들은 상품사회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고독하고 쓸쓸한 감정인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화면 속에서 마치 잔잔한 호수 그 밑바닥에서 조용하지만 웅혼하게 터져 나오는 아득한 실재와 자연, 인간과 휴식, 사랑과 소외와 같은 따뜻한 정서와 감성들이 간취된다. 이는 한국의 팝아트가 일본의 네오 팝에서 영향을 받고 출발하고 있지만, 일본이나 서구의 팝아트와는 다른 재료와 물성, 표현기법에서 오는 표면으로서의 팝뿐만 아니라 정신성으로서의 팝아트의 새로운 면모를 제시하고 미세한 감동을 동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팝아트가 일궈낸 성과이기도 하다. 작가가 근작에서 제시하는 두 개의 시선에서 상품 시대, 상품문화의 증언을 통한 우리 본질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반성과 물밀듯 들어오는 이국의 자연을 가장한 외제상품의 길들여짐에 관한 경계의 어조가 엿보인다.  작가 김신혜의 상표에 들어앉은 폭포가 그림인지 실재인지 환상인지 모호한 물병을 바라보면서 소비의 시대, 환상의 시대에 우린 진정 무얼 먹고 사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2011.10)

박옥생, 한원미술관 큐레이터, 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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